김치, 맛의 혁명은 익숙한 담금에서 '양념'의 추월차선이었다
K-Food 김치 뿌리 05 : 18세기 김치의 혁명: 담저법과 포저법의 차이
늦가을 김장철 김치, 소금에 푹 절여진 배추의 노란 잎을 벌려 그 사이사이에 붉은 양념을 빈틈없이 채워 넣는 풍경.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친숙한 장면입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어머니 곁에 쪼그려 앉아 양념이 듬뿍 발린 겉절이 한 입을 받아먹기 위해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리곤 했습니다.
놀랍게도 이토록 친숙한 배추에 속 넣기 방식이 수천 년 김치 역사에서 그리 오래된 조리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맑은 소금물에 채소를 가라앉히던 선조들의 지혜가 어떻게 붉은 양념을 품은 김치의 예술적 진화와 그 식문화의 변화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단순한 담금, '담저법'의 시대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우리의 김치 담금법은 채소를 소금물이나 간장에 담가두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를 학술적인 용어로 담저법이라고 부릅니다. 채소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은 농도의 소금물에 채소를 통째로 가라앉혀 자체적인 유산균 발효를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15세기 중반에 편찬된 농서이자 조리서인 『산가요록』이나 1483년의 『사시찬요초』를 살펴보면, 당시의 김치는 오이, 가지, 무 등을 소금이나 '장'에 절여 국물과 함께 먹는 동치미나 나박김치, 짠지의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고추가 없었기 때문에 산초나 '천초'로 톡 쏘는 맛을 더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18세기, 양념 김치의 화려한 등장
오랜 세월 유지되던 담저법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은 18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유입된 고추가 100여 년의 적응기를 거쳐 본격적으로 식탁의 주인공으로 등극했기 때문입니다.
1740년경 쓰인 『수문사설』을 들여다보면, 김치에 '젓갈', '새우젓' 등과 고춧가루를 함께 활용한 기록이 최초로 확인됩니다.
고추의 강력한 항균 작용 덕분에 쉽게 상하던 해산물 젓갈을 듬뿍 넣을 수 있게 되었고, 젓갈의 동물성 단백질이 발효되면서 폭발적인 감칠맛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배추 잎에 양념을 품다, '포저법'의 탄생
고추와 마늘, 파, 생강, 젓갈이 어우러진 걸쭉하고 풍성한 혼합 양념이 탄생하자, 선조들은 이를 채소에 효과적으로 버무리고 보존할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채소 즉, '배추'의 잎과 잎 사이에 양념을 켜켜이 채워 넣는 포저법입니다.
문헌을 살펴보면, 19세기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 등에서 배추나 동아에 칼집을 내어 고기나 해산물, 갖은 양념을 소로 채워 넣는 형태의 화려한 섞박지와 통김치 제법이 폭넓게 등장합니다.
단순히 물에 가라앉히던 1차원적 발효 즉, 단순히 물에 가라앉히는 일차침채의 단계를 넘어, 양념을 채우고 재발효시키는 이차침채의 고도화된 기술로 진입한 것입니다.
조선 식탁의 혁명: '담저법'에서 '포저법'으로의 진화
담저법은 소금물이나 장에 담그는 방식으로 고추가 한반도에 유입되기 이전인 조선 전기에는 채소를 소금물이나 장에 완전히 잠기게 담그는 담저법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때는 주로 무, 오이, 가지 등의 채소에 소금, 간장, 천초 등을 사용하여 담백하고 깔끔하게 맛을 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채소 자체의 수분과 절임액이 어우러지는 이 고전적인 발효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동치미, 짠지, 나박김치, 장아찌 등의 형태로 현대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반면, 18세기 이후, 포저법은 복합 양념을 채워 넣는 발전된 방법으로 고추와 젓갈의 사용이 널리 보편화되면서 김치 조리법은 포저법이라는 혁명적인 형태로 진화하게 됩니다. 이는 배추 잎 사이나 무에 낸 칼집 속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각종 젓갈로 버무린 복합 양념을 꼼꼼하게 채워 넣는 방식입니다.
속이 꽉 찬 결구배추의 보급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달한 이 고도화된 조리법은 현재 한국 김치의 대명사로 불리는 통배추김치, 화려한 보쌈김치, 그리고 아삭한 오이소박이로 발전하여 우리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가 즐겨찾는 고깃집에서 나오는 반찬으로 예를들면, 맑은 명이나물 절임이나 쌈무는 '담저법'의 후손이고, 속이 꽉 찬 배추김치나 아삭한 오이소박이는 '포저법'의 자랑스러운 후손입니다. 식탁 위에 놓인 반찬을 보며 이 두 가지 조리법의 뿌리를 구분해 보면 식사 시간이 훨씬 더 즐거워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포저법은 배추로 담근 김치에만 쓰이는 말인가요?
배추뿐만 아니라 오이소박이나 가지김치처럼 채소에 칼집을 내고 그 틈에 소 즉, 양념을 채워 넣는 모든 고도화된 방식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양념이 씻겨 내려가지 않고 채소 내부에 깊이 배어들게 하는 훌륭한 과학적 기법입니다.
Q: 왜 하필 18세기에 이런 방식이 폭발적으로 발달했나요?
농업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채소 재배가 가능해졌고,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전국 단위로 소금과 새우젓, 멸치젓 등 해산물의 내륙 유통망이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Q: 포저법이 유행하면서 기존의 담저법으로 만드는 물김치류는 사라졌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매운 양념 김치는 포저법으로, 시원하고 맑은 물김치류는 담저법으로 서로의 맛을 보완하며 함께 발전했습니다. 고구마를 먹을 때 동치미를 찾듯, 두 조리법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식탁의 풍요를 이끌었습니다.
소금물에 둥둥 떠 있던 소박한 채소가 붉은 생명력을 품은 화려한 보석으로 재탄생하기까지, 18세기 조선의 식탁 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위대한 미식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리법의 진화는 한국 김치가 세계적인 발효 식품으로 거듭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 전기까지의 저장법인 담저법은 18세기 이후 고추와 젓갈이 융합되면서 『수문사설』 등의 문헌 기록과 같이 감칠맛이 폭발하는 포저법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포저법의 완성으로 배추 잎 사이와 채소의 틈에 복합 양념을 채워 넣는 고도화된 발효 기술로, 오늘날 통김치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잘 익은 통배추김치의 밑동을 자르고 잎을 길게 찢어 따뜻한 밥 위에 올려보시길 바랍니다. 겹겹이 채워진 그 붉은 양념 속에는 수백 년 전 선조들이 빚어낸 맛의 혁명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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