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재료인 배추는 '숭(菘)'이라는 약초에서 시작됬다?
[K-Food 뿌리 07] 조선 초기의 배추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순무와의 관계)
김치 김장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크고 묵직한 결구배추[結球白菜, Headed cabbage]를 보면, 이 든든한 채소가 수천 년 전부터 김치는 우리 민족의 밥상을 지켜왔을 것이라 짐작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페이지를 들춰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속이 꽉 찬 배추 김치는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문헌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배추의 모습은 놀랍게도 지금의 배추가 아닌, 뿌리가 발달한 '순무[Turnip]'와 훨씬 더 닮아 있었습니다. 초기 배추가 어떻게 기록되었고, 순무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우리 식탁에 올랐는지 그 원초적인 형태를 추적해 보았습니다.
1. 약초로 처음 등장한 배추, '숭(菘)'
한반도의 역사 문헌에서 배추의 흔적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려 고종 연간(1236~1251)에 대장도감에서 간행된 현존 최고(最古)의 의학서적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13C medical book]』에는 배추를 뜻하는 한자인 '숭[菘, Cabbage]'이라는 글자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향약구급방]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농서나 요리서가 아니라 질병을 치료하는 처방을 모은 의학서라는 사실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에 들어온 배추는 일상적인 채소라기보다는 화상이나 옻독 등을 치료하거나 질병 회복을 돕는 일종의 약초[藥草, Medicinal herb]로 먼저 인식되고 이용되었습니다.
[내 몸을 살리는 우리농산물]
핵심 포인트
초기 배추의 2가지 특징
- 식용 채소보다 약초(민간 상비약) 로 먼저 기록됨
- 잎이 둥글게 뭉치지 않고, 뿌리가 두껍게 발달한 형태
2. 배추와 순무의 형태학적 교집합
그렇다면 『향약구급방』에 기록된 당시의 배추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문헌의 묘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아는 배추와는 완전히 다른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배추는 줄기가 짧고 잎은 넓고 두터우며 광대하여 '순무[Turnip]'와 형태가 거의 비슷했으나, 표면에 실털이 더 많은 것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김치의발달과정].
실제로 식물학적 분류 체계를 보아도 순무는 십자화목 배추과[Brassica rapa]에 속하는 근연종으로, 잎을 크게 발달시킨 것이 배추이고 뿌리를 크게 발달시킨 것이 순무일 정도로 두 작물의 유전적 뿌리는 매우 깊게 닿아 있습니다.
| 구분 | 조선 초기 배추 (비결구종) | 순무[Turnip] |
|---|---|---|
| 형태 | 잎이 벌어지고 상단부가 열려있음 | 팽이 모양의 둥근 구근이 발달함 |
| 식물학적 위치 | 십자화과 배추속 | 십자화과 배추속 (배추와 교배 가능) |
| 맛의 특징 | 잎이 얇고 뿌리에서 단맛이 남 | 무보다 수분이 적고 단맛이 강함 |
3. 배추와 무의 중간 형태, '무청(蕪菁)'의 활용
초기 배추가 순무와 비슷한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이 둘의 특징이 혼재된 작물이 구황작물[救荒作物, Famine relief crop]로 널리 쓰인 기록도 발견됩니다.
조선 7대 왕 세조 1년(1455)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기록을 보면, 흉년이 들었을 때 "배추와 무의 중간 형태인 채소, 즉 무청[蕪菁, Turnip/Radish-cabbage hybrid]의 뿌리를 푹 쪄서 장[醬, Fermented soybean paste] 속에 담아 구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시가 명확하게 확인됩니다.[조선왕조실록]
잎사귀가 제대로 결구되지 않아 얇고 억셌던 초기 배추류는 자연스럽게 영양분이 뿌리로 집중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빈약한 배춧잎 대신 단맛이 도는 두꺼운 배추 뿌리(순무 형태)를 찌거나 장에 절여 긴 겨울과 보릿고개를 버텨내는 생존의 식량으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옛날 사람들은 정말로 배추의 '뿌리'를 먹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과거 조선시대의 재래종 배추는 지금처럼 잎이 풍성하게 속을 꽉 채우는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상부의 잎보다 땅속의 뿌리가 훨씬 발달했습니다. 이 뿌리는 순무처럼 단단하고 단맛이 나서 간식거리나 절임용으로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Q2: 순무와 배추는 완전히 다른 식물이 아닌가요?
식물학적으로 두 작물은 배추속(Brassica)에 속하는 형제 식물입니다. 본래 한 식물이었으나 인간이 재배하는 과정에서 '뿌리'를 크게 개량한 것이 순무가 되었고, '잎'이 크게 자라도록 개량한 것이 배추가 되었습니다.
Q3: 왜 초기에는 배추를 김치로 많이 담그지 않았을까요?
순무와 형태가 비슷했던 조선 초기의 비결구 배추는 잎이 얇고 수분이 적어 소금에 절이면 뻣뻣해지거나 금방 물러버려 저장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19세기 결구배추가 정착하기 전까지는 조직이 단단한 무나 순무가 김치의 진짜 주연 역할을 맡았습니다.
마무리
현대의 화려하고 거대한 통배추 김치의 이면에는, 순무를 닮은 작은 뿌리와 잎사귀로 척박한 시대를 견뎌냈던 조선 초기 배추의 소박한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헌을 통해 확인한 내용들을 짚어보겠습니다.
**핵심 정리:
- 약초로서의 시작: 13세기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처음 등장한 배추는 치료를 돕는 약초의 역할을 먼저 수행했습니다.
- 순무와의 유사성: 초기 배추는 잎이 벌어지고 뿌리가 발달하여 형태와 식물학적 계통 면에서 순무와 거의 같았습니다.
- 구황작물의 역할: 1455년 기록에 등장하듯, 배추와 무의 중간 형태인 '무청[蕪菁]'의 뿌리를 장에 절여 기근을 이겨내는 데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김장철의 풍성한 배추를 볼 때, 수백 년 전 순무를 닮은 작은 뿌리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 장에 절여 먹었던 선조들의 식문화의 진화 과정을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참고 자료
- 향약구급방 (고려 고종 연간)
- 조선왕조실록 (세조 1년)
- 부산대학교 김치연구소 (김치의 발달과정)
-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내 몸을 살리는 우리농산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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