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고향의 김치 맛을 그리워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기억

관리자
2026년 3월 11일
0
0

[K-Food 뿌리 18]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그리워한 고향의 김치 맛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Dasan Jeong Yak-yong]. 그는 18년이라는 길고 고통스러운 전라남도 강진[Gangjin] 유배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학문에 매진하며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기나긴 유배지의 다산초당[茶山草堂, Dasan Chodang]에서 거친 밥상을 마주했던 그를 위로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산이 남긴 시와 서신, 문집들을 들여다보면 그가 젊은 시절 즐겼던 시원한 김치와 냉면의 추억, 그리고 유배지에서 목격한 백성들의 생생한 식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당대 최고 지식인의 시선에 포착된 김치의 역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1. 젊은 시절의 추억, '푸른 배추김치'와 냉면

다산이 유배를 떠나기 전, 관료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남긴 시에는 화려하고 풍성한 미식[美食, Gastronomy]의 풍경이 등장합니다. 18세기 후반의 평양과 한양 등지에서는 이미 냉면[Naengmyeon, Cold buckwheat noodles]이 폭발적인 수요를 자랑하며 전국적인 별미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음식과사람].

다산 정약용은 황해도 해주에 시험 감독관으로 파견되었을 때 지은 시에서 그 맛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그는 시를 통해 "갓처럼 생긴 냄비에 노루고기 전골 먹고, 푸른 배추김치[Green cabbage kimchi] 곁들여 냉면을 먹는다"라고 노래했습니다[음식과사람]. [더 알아보기]
차가운 동치미나 배추김치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톡 쏘는 그 청량감은, 훗날 남도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가 가장 그리워했을 고향과 과거의 화려했던 맛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핵심 포인트

다산 정약용 문헌 속 김치의 3가지 시선
1. 관료 시절 (시): 노루고기 전골과 함께 즐기던 고급스러운 '푸른 배추김치'와 냉면.
2. 유배 시절 (문집): 하층민들이 추위와 부패를 이겨내기 위해 널리 쓴 '고추 김치' 관찰.
3. 학자의 시선 (아언각비): 김치와 양념 채소 절임의 학술적 어원 및 분류 정리.


2. 백성의 밥상에서 발견한 생명력, 고추 김치

유배지인 강진에서 다산이 마주한 백성들의 밥상은 과거 한양에서 즐기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거친 자연과 싸우며 살아가는 하층민[下層民, Lower classes]의 생생한 삶을 관찰하고 귀중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김치 역사 연구서에 따르면, 다산이 남긴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Collected Works of Dasan]』 등의 문헌을 통해 1600년 전후 조선 땅에 유입된 고추[Gochu, Chili pepper]가 하층민의 음식으로 먼저 널리 사용되었던 값싼 식재료였음이 밝혀졌습니다[문화일보, 2013].
비싼 소금을 넉넉히 구하기 힘들었던 일반 백성들에게, 붉고 매운 고추는 적은 양으로도 채소의 부패를 막아주고 몸에 열을 내주는 하늘이 내린 훌륭한 보존제였습니다. [더 알아보기]
다산은 유배지에서 백성들이 밭에서 기른 고추를 듬뿍 넣어 맵게 담근 김치로 맹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는 역동적인 민중의 생명력을 목격하고 이를 오롯이 기록했던 것입니다.


3. 학자의 시선으로 정의한 김치, 『아언각비』

음식과 언어에 대한 다산의 관심은 단순한 시적 감상을 넘어 학문적인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1819년 유배지에서 저술한 어휘 연구서 『아언각비[雅言覺非, Aeongakbi]』를 통해 일상어들의 잘못된 쓰임을 바로잡았는데, 여기에 김치와 관련된 중요한 어원학적 분석이 등장합니다.

다산은 이 책에서 채소 절임을 뜻하는 한자어들을 명확히 분류했습니다. 그는 "채소에 양념을 넣고 버무린 것을 제[虀, Seasoned kimchi]라고 부른다"고 명시하며, 이를 단순한 채소 절임인 '저[菹, Pickled vegetables]'의 일종으로 명확히 규정했습니다[서지학연구, 2018].
이는 단순한 소금 절임에서 벗어나 마늘, 파, 생강 등 갖은 양념이 가미되는 방향으로 고도화되고 있던 19세기 초반 조선의 김치 발효 문화를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문헌적으로 정확히 포착하고 학술적으로 정리해 낸 위대한 업적입니다.

구분다산의 기록 매체묘사된 김치와 식문화의 특징
미식가로서의 다산황해도 해주시절의 漢詩노루고기 전골과 함께 '푸른 배추김치'를 곁들인 냉면을 묘사함.
관찰자로서의 다산『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고추가 소금을 대체하는 하층민의 값싼 식재료이자 생존 양념으로 널리 쓰임을 기록함.
학자로서의 다산『아언각비[雅言覺非]』 (1819)양념이 들어간 복합 김치를 '제[虀]'로 정의하며 발효 식문화의 언어학적 계통을 세움.

여름철 고깃집에서 흔히 시켜 먹는 시원한 물냉면. 그 위에 얹어진 얇은 무김치나 배추김치를 보며, 200여 년 전 해주에서 노루고기와 함께 냉면 사리를 들이켜며 시를 읊었던 다산 정약용의 낭만을 상상해 보세요. 평범한 식탁 위의 한 그릇이 조선시대 선비의 풍류와 연결되는 낭만의 순간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었나요?

다산초당에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시절, 그는 텃밭(채마밭)을 직접 일구며 채소를 길렀습니다. 차[茶, Tea]를 즐기고 자연의 섭리를 사랑했던 그의 성정상, 주변에서 얻은 채소로 소박하게 절인 김치류나 장아찌를 일상식으로 곁들여 먹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Q2: 고추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식재료가 아니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서우의 시나 『다산시문집』의 연구에서 드러나듯, 매운맛이 강한 고추는 처음에는 보수적인 양반들보다는 값비싼 소금을 대체해야만 했던 하층민들에게 먼저 널리 퍼지며 김치의 붉은 혁명을 주도했습니다[문화일보, 2013].

Q3: 양념을 뜻하는 '제(虀)'와 '저(菹)'는 현대에 어떻게 남아있나요?

현대에는 '저'와 '제'라는 한자어 자체보다는 순우리말인 '지' 혹은 '김치'라는 명칭으로 완전히 통합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산이 남긴 기록 덕분에 우리는 19세기에 이미 복합 양념을 사용한 김치 조리법이 확고한 식문화로 정착해 있었음을 학술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무리

다산 정약용이 남긴 붓끝에는, 푸른 배추김치와 차가운 냉면을 즐기던 조선 선비의 낭만과, 가난 속에서도 붉은 고추 김치로 생명을 이어갔던 일반 백성들의 고단한 땀방울이 모두 묻어 있습니다.

핵심 정리

- 배추김치와 냉면: 황해도 시절의 시를 통해 18세기 후반 조선 사회의 화려한 냉면 문화와 배추김치의 조화를 기록했습니다.
- 백성들의 고추 활용: 『다산시문집』은 고추가 양반보다 하층민들의 생존과 밥상을 위해 먼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합니다.
- 어원학적 정리: 『아언각비』를 통해 양념이 버무려진 김치를 '제[虀]'로 명확히 분류하여 19세기 김치 발효의 진화를 학술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오늘 식탁에 오른 매콤한 배추김치를 베어 물 때,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백성들의 강인한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하고 그 식문화를 철학적으로 탐구했던 다산 정약용의 숭고한 정신을 깊이 음미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참고 자료

  • 음식과사람 (서민 음식에서 양반의 별미 거쳐 임금의 외식 메뉴로…)
  • 문화일보 (김치의 기원, 중국 저채 아니다, 2013. 4)
  • 서지학연구 제74집 (김치류 서지의 계통에 관한 연구, 2018. 6)
  • 인터넷 자료 (강진 다산초당 및 유배지 역사 기록)
이 글이 도움이 되셨나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