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치에 지식인은 집착했나? 유배지에서 당신의 편향을 박살 낼 다산
K-Food 김치 뿌리 18: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그리워한 고향의 김치 맛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그는 18년이라는 길고 고통스러운 전라남도 강진 유배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학문에 매진하며 『목민심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기나긴 유배지의 다산초당에서 거친 밥상을 마주했던 그를 위로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산이 남긴 시와 서신, 문집들을 들여다보면 그가 젊은 시절 즐겼던 시원한 김치와 냉면의 추억, 그리고 유배지에서 목격한 백성들의 생생한 식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당대 최고 지식인의 시선에 포착된 김치의 역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추억, '푸른 배추김치'와 냉면
다산이 유배를 떠나기 전, 관료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남긴 시에는 화려하고 풍성한 미식의 풍경이 등장합니다. 18세기 후반의 평양과 한양 등지에서는 이미 냉면이 폭발적인 수요를 자랑하며 전국적인 별미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황해도 해주에 시험 감독관으로 파견되었을 때 지은 시에서 그 맛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그는 시를 통해 "갓처럼 생긴 냄비에 노루고기 전골 먹고, 푸른 배추 김치 곁들여 냉면을 먹는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차가운 동치미나 배추김치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톡 쏘는 그 청량감은, 훗날 남도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가 가장 그리워했을 고향과 과거의 화려했던 맛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한 편의 시 안에 요리법과 식재료, 먹는 방식까지 함께 녹여낸 다산의 필치에서, 당시 조선 상류층의 식문화가 얼마나 정교하고 풍성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훗날 고된 유배지의 밤, 붓을 내려놓고 눈을 감을 때 그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올랐을 장면도 바로 그 해주의 냉면 한 그릇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문득 그 쓸쓸함이 가슴 한구석을 짓눌러 오는 기분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문헌 속 김치의 3가지 시선
관료 시절에는 시를 통해 노루고기 전골과 함께 즐기던 고급스러운 '푸른 배추김치'와 냉면을 묘사했습니다. 유배 시절에는 문집을 통해 하층민들이 추위와 부패를 이겨내기 위해 널리 쓴 '고추 김치'를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학자의 시선으로는 『아언각비』를 통해 김치와 양념 채소 절임의 학술적 어원 및 분류를 정리했습니다.
백성의 밥상에서 발견한 생명력, 고추 김치
유배지인 강진에서 다산이 마주한 백성들의 밥상은 과거 한양에서 즐기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거친 자연과 싸우며 살아가는 하층민의 생생한 삶을 관찰하고 귀중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김치 역사 연구서에 따르면, 다산이 남긴 『다산시문집』 등의 문헌을 통해 1600년 전후 조선 땅에 유입된 고추가 하층민의 음식으로 먼저 널리 사용되었던 값싼 식재료였음이 밝혀졌습니다. 문화일보의 2013년 4월 보도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내용이 소개된 바 있습니다.
비싼 소금을 넉넉히 구하기 힘들었던 일반 백성들에게, 붉고 매운 고추는 적은 양으로도 채소의 부패를 막아주고 몸에 열을 내주는 하늘이 내린 훌륭한 보존제였습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백성들이 밭에서 기른 고추를 듬뿍 넣어 맵게 담근 김치로 맹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는 역동적인 민중의 생명력을 목격하고 이를 오롯이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의 시선에는 학자의 냉정함과 목민관의 따뜻한 연민이 동시에 담겨 있었습니다. 양반의 눈높이에서 백성들의 밥상을 '초라하다' 여기는 대신, 그 안에 담긴 생존의 지혜와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읽어낸 것입니다.
소금 한 줌보다 고추 한 움큼이 더 큰 힘을 발휘하던 시절, 붉게 물든 김치 항아리는 가난한 백성들의 겨울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학자의 시선으로 정의한 김치, 『아언각비』
음식과 언어에 대한 다산의 관심은 단순한 시적 감상을 넘어 학문적인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1819년 유배지에서 저술한 어휘 연구서 『아언각비』를 통해 일상어들의 잘못된 쓰임을 바로잡았는데, 여기에 김치와 관련된 중요한 어원학적 분석이 등장합니다.
다산은 이 책에서 채소 절임을 뜻하는 한자어들을 명확히 분류했습니다. 그는 "채소에 양념을 넣고 버무린 것을 제(虀)라고 부른다"고 명시하며, 이를 단순한 채소 절임인 '저'의 일종으로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서지학연구 제74집에 수록된 김치류 서지의 계통에 관한 연구, 2018년에서도 이 대목은 조선 후기 발효 식문화의 학술적 전거로 중요하게 인용된 바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소금 절임에서 벗어나 마늘, 파, 생강 등 갖은 양념이 가미되는 방향으로 고도화되고 있던 19세기 초반 조선의 김치 발효 문화를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문헌적으로 정확히 포착하고 학술적으로 정리해 낸 위대한 업적입니다.
실학자 다산답게, 그는 음식 하나를 두고도 그 언어적 계보와 문화적 의미를 끝까지 추적했습니다. 유배라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집념이, 결과적으로 우리가 오늘날 김치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한 근거를 남겨 주었습니다.
생활 꿀팁
여름철 고깃집에서 흔히 시켜 먹는 시원한 물냉면. 그 위에 얹어진 얇은 무김치나 배추김치를 보며, 200여 년 전 해주에서 노루고기와 함께 냉면 사리를 들이켜며 시를 읊었던 다산 정약용의 낭만을 상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평범한 식탁 위의 한 그릇이 조선시대 선비의 풍류와 연결되는 낭만의 순간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었나요?
다산초당에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시절, 그는 텃밭을 직접 일구며 채소를 길렀습니다. 차를 즐기고 자연의 섭리를 사랑했던 그의 성정상, 주변에서 얻은 채소로 소박하게 절인 김치류나 장아찌를 일상식으로 곁들여 먹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Q: 고추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식재료가 아니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서우의 시나 『다산시문집』의 연구에서 드러나듯, 매운맛이 강한 고추는 처음에는 보수적인 양반들보다는 값비싼 소금을 대체해야만 했던 하층민들에게 먼저 널리 퍼지며 김치의 붉은 혁명을 주도했습니다. 문화일보 2013년 4월 보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Q: 양념을 뜻하는 '제와 '저'는 현대에 어떻게 남아 있나요?
현대에는 '저'와 '제'라는 한자어 자체보다는 순우리말인 '지' 혹은 '김치'라는 명칭으로 완전히 통합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산이 남긴 기록 덕분에 우리는 19세기에 이미 복합 양념을 사용한 김치 조리법이 확고한 식문화로 정착해 있었음을 학술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남긴 붓끝에는, 푸른 배추김치와 차가운 냉면을 즐기던 조선 선비의 낭만과, 가난 속에서도 붉은 고추 김치로 생명을 이어갔던 일반 백성들의 고단한 땀방울이 모두 묻어 있습니다.
황해도 해주에서 노루고기 전골과 냉면을 곁들이던 풍류의 시절부터, 강진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고추 김치에서 민중의 생명력을 읽어내던 관찰의 시절까지, 그의 시선은 언제나 음식 너머의 삶과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관찰과 사유는 『아언각비』라는 학술적 결실로 이어져, 오늘날 우리가 김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문헌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식탁에 오른 매콤한 배추김치를 베어 물 때,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백성들의 강인한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하고 그 식문화를 철학적으로 탐구했던 다산 정약용의 숭고한 정신을 깊이 음미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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