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김치, 개성상인의 봇짐과 닮은 보석상자 속의 성공비밀 설계도 3가지
K-Food 김치 뿌리 11: 개성 사람들이 즐겼던 화려한 '보쌈김치'의 유래
마치 소중한 선물을 포장하듯 커다란 배춧잎을 동그랗게 감싸 놓은 김치를 본 적이 있나요? 젓가락으로 겉을 감싼 잎을 조심스레 열어보면, 그 안에서 새빨간 김치와 함께 낙지, 전복, 굴 같은 해산물과 밤, 대추, 잣, 배 같은 달콤한 열매들이 보물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어린 친구들이 본다면 "우와, 김치가 아니라 바닷속 보물 상자 같아요!"라고 외칠 만큼 화려한 이 김치의 이름은 바로 보쌈김치입니다. 옛날 황해도 개성 지방에서 시작된 이 화려하고 맛있는 김치는 도대체 누가, 왜 이렇게 정성스럽게 싸서 먹기 시작한 것일까요? 부자 상인들의 도시였던 개성의 역사 속으로 분석해 봅니다.
첫번째 보쌈김치의 탄생 비밀: 잎이 넓은 '개성배추'
김치를 보자기처럼 싸려면 당연히 포장지 역할을 할 아주 크고 넓은 잎사귀가 필요하겠죠? 보쌈김치가 다른 곳도 아닌 개성에서 발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개성배추'라는 특별한 채소 덕분입니다.
문헌과 농업 기록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밭에서 흔히 보는 동그랗고 속이 꽉 찬 결구 배추와 달리, 옛날 개성배추는 속이 덜 차고 줄기가 길며 잎이 바깥으로 넓게 퍼지는 반결구형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자라는 배추는 길이가 짧아 여러 쪽으로 자르거나 쌈을 싸기 힘들었지만, 개성배추는 잎이 워낙 크고 넓어서 김칫소를 듬뿍 넣고 둥글게 보쌈은 보자기처럼 감싸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보쌈김치의 탄생 비밀: 지혜로운 부자들, '개성상인'
이렇게 화려한 김치를 만들려면 전복, 잣, 밤, 낙지 같은 아주 비싼 재료들이 잔뜩 필요합니다. 옛날 평범한 백성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음식재료들이었죠. 그런데, 개성에는 '송상'이라고 불리는, 장사를 아주 잘해서 돈이 많은 개성상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이 되면 자신의 부유함을 보여주고 정성을 대접하기 위해 값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보쌈김치를 담갔습니다.
여기에 개성상인들의 아주 재미있고 실용적인 돈 버는 지혜와 상술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배추에서 내년에 심을 씨앗을 얻으려면 개성상인들은 이듬해 심을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배추의 생장점을 보존하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배추를 세로로 가르지 않고 상단 잎만을 가로로 절단하여 사용하던 검소한 습관이 보쌈김치의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이렇게 잘라낸 잎으로 김치를 버무리면 모양이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돈되지 않은 김치 조각들을 가장 크고 넚적한 배춧잎 한 장으로 예쁘게 둥글게 감싸 숨겼고, 이것이 봇짐 또는 짐보따리를 닮았다고 하여 초기에는 보찜 김치라 불리다가 오늘날의 보쌈 김치가 되었다는 흥미로운 역사적 가설이 있습니다.
영양을 꽉 가두는 발효 과학과 식치
보쌈김치는 단순히 보기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이 음식을 통해 건강을 다스렸던 '식치'의 지혜가 완벽하게 녹아있는 과학적인 음식입니다.
온갖 해산물과 과일, 양념을 넣고 커다란 잎으로 꽁꽁 싸매어 항아리에 넣으면, 김치가 발효되면서 만들어지는 맛있는 국물과 영양분, 향기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지 않고 배춧잎 안쪽에서 환상적으로 섞이게 됩니다.
『조선민속사전』의 기록을 보면, 개성 지역의 여성들은 이 영양 만점의 보쌈김치를 새해부터 잘 보관해 두었다가, 행상 즉, 장사를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 오랫동안 먼 지방으로 떠났다가 봄철 명절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남편들에게 정성껏 대접하며 체력을 보충하게 했다고 합니다.
일반 통배추 김치와 보쌈 김치의 차이와 비교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 통배추 김치는 철저히 ‘효율’과 ‘지속’에 맞춰진 생존과 식치의 산물입니다. 속이 꽉 찬 결구 배추를 세로로 길게 잘라, 무와 파, 마늘, 젓갈이라는 핵심 재료를 채워 넣습니다.
배추 잎 사이사이에 양념을 발라 차곡차곡 쌓아 올린 그 모습은, 추운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시킨 단단한 뼈대와 같은 것이며, 식탁을 지키는 99% 서민들을 위한 지혜의 산물입니다.
반면, 개성 보쌈김치는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와 특수한 개성의 맞춤화 된 설계도를 품고 있습니다. 잎이 크고 넓은 개성 특유의 반결구형 배추를 기본으로 삼고, 그 속에는 낙지, 전복 같은 해산물부터 잣, 밤, 배, 사과까지 산해진미를 총동원합니다.
이건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식탁 위의 보물 상자입니다. 썰어낸 재료를 뭉쳐 가장 넓은 잎으로 보자기처럼 둥글게 감싼 그 정성은, 귀한 손님이나 거대 상인들을 사로잡기 위해 잘 짜여진 압도적 지배력의 상징이라 할 것입니다.
결국, 통배추김치가 겨울이라는 추위와 시간 즉, 건강하게 겨울 버티기의 결과라면, 보쌈김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귀한 손님을 위한 영양 만점의 고급 접대용 김치입니다.
생활 꿀팁
요즘 유명한 한정식 식당에 가면 동그랗게 말린 보쌈김치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일반 김치처럼 마구 찢어 먹지 말고, 정수리에 있는 배춧잎을 가위로 열십자 즉, '十' 모양으로 자른 뒤 꽃잎처럼 활짝 펼쳐보세요.
그 안에 든 해산물과 과일을 하나씩 골라 먹는 재미야말로 개성 보쌈김치를 가장 우아하게 즐기는 비법입니다.
보쌈김치는 돼지고기 수육을 싸 먹는 그 '보쌈'이랑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고깃집에서 먹는 보쌈은 삶은 돼지고기를 절인 배추에 싸 먹는 요리 자체를 말하지만, 전통적인 보쌈김치 또는 보김치는 고기 없이 김치 자체를 보자기처럼 둥글게 싸서 익힌 독립된 김치의 한 종류를 뜻합니다. 물론 익은 보쌈김치에 돼지고기를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은 최고가 맞습니다.
보쌈김치는 개성뿐만 아니라 궁궐이나 고관대작들이 즐겨 먹었습니다.
1920년대 신문 기록에 따르면, 보쌈김치는 워낙 손이 많이 가고 재료가 비싸서 본래 조선의 궁중이나 고관대작들만 해 먹던 고급 궁중 김치법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이 망한 뒤 궁궐 요리사들이 명월관 같은 식당을 열면서 민간의 부유층에게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즉, 궁중의 조리법과 개성의 좋은 배추, 그리고 상인들의 부유함이 만나 탄생한 걸작입니다.
보쌈김치에는 해산물과 과일이 많이 들어가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개성은 상업이 발달해 전국 각지에서 좋고 신선한 물건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바다의 영양이 많은 낙지, 전복과 땅의 영양을 대표하는 잣, 밤, 채소을 한데 모아 유산균과 함께 발효시킴으로써, 추운 겨울철과 장거리 여행에 지친 사람들의 기력을 한 번에 회복시키려는 훌륭한 건강식 즉, 식치의 목적 있었습니다.
넓은 배춧잎 속에 산과 바다의 진귀한 생명력을 가득 채워 넣고 정성스레 보자기를 묶었던 선조들의 손길. 보쌈김치는 단순한 반찬을 넘어 훌륭한 종합 영양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쌈김치는 개성배추의 형태적 특성과 개성상인들의 실용적인 경제관념, 그리고 산해진미를 한데 모아 영양을 보존하려던 식치의 지혜가 융합되어 탄생한 한국 발효 문화의 정수다.
식탁 위에 놓인 김치를 보며, 먼 길을 돌아온 가족의 건강을 위해 맛있는 재료를 김치 잎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수백 년 전 어머니들의 따뜻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한 번쯤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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