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옛 김치는 붉은 색이 아니였다!
[K-Food 뿌리 03] 지금의 붉은색 김치는 언제부터였을까?
'김치' 하면 반사적으로 붉은색과 매콤한 고추의 맛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아는 붉은 김치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고추[Gochu, Chili pepper]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이며, 김치에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8세기 무렵이기 때문입니다.[한국의 김치문화]
그렇다면 고추가 없던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조상들의 식탁은 맵지 않고 심심하기만 했을까요? 옛 문헌들을 살펴보니 선조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고추를 대신할 놀랍도록 다채로운 향신료[香辛料, Spices]를 활용해 알싸한 맛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1. 천초와 산초, 한반도의 오리지널 매운맛
고추가 등장하기 전, 한반도의 매운맛을 책임졌던 일등 공신은 바로 천초[川椒, Sichuan pepper]와 산초[山椒, Prickly ash]였습니다.
천초는 초피나무의 열매 껍질을 말하며 특유의 톡 쏘는 아린 맛이 강하고, 산초는 산초나무의 열매로 은은하면서도 상쾌한 향이 특징입니다. 문헌을 보면 신라와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나박김치[Nabak kimchi, Water kimchi]와 동치미[Dongchimi, Radish water kimchi]가 발달했는데, 이때 양념으로 가장 널리 쓰인 것이 바로 천초와 생강, 귤껍질 등이었습니다.[한국농협김치]
특히 17세기 후반 조리서인 『요록[要綠, 17th-century recipe book]』에 기록된 김치 담금법을 보면 고추 대신 소금과 천초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맛을 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서지학연구, 2018]. 고추의 직선적인 매운맛과는 다른, 입안이 얼얼해지는 입체적인 매운맛을 즐겼던 것입니다.
핵심 포인트
고추 이전의 3대 매운맛 대용품
천초(초피)의 알싸함 + 후추의 매콤함 + 생강의 열기
2. 귀족들의 매운맛, 후추
산초와 천초가 산과 들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토속 향신료였다면, 후추[胡椒, Black pepper]는 실크로드를 거쳐 수입되는 매우 값비싼 향신료였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귀족층이나 궁중에서는 김치나 절임류에 후추를 넣어 고급스러운 매운맛과 풍미를 더했습니다.
1670년경 쓰여진 아시아 최초의 여성 저술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Eumsik dimibang]』의 기록에서도 고춧가루 대신 천초나 후추를 활용하여 김치의 맛을 낸 흔적이 명확히 나타납니다[서지학연구, 2018].
당시 후추는 금값과 맞먹을 정도로 귀했기 때문에, 후추가 들어간 김치를 상에 올리는 것은 가문의 재력과 권위를 과시하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3. 마늘과 생강, 그리고 귤껍질의 조화
매운맛을 내는 또 다른 핵심 재료는 생강[生薑, Ginger]과 마늘[蒜, Garlic]이었습니다.
15세기 서거정 등이 편찬한 『동문선[東文選, Dongmunseon: Anthology of Korean literature]』의 「산촌잡영[山村雜詠]」이라는 시를 보면, 김치 무리의 재료로 배추와 무뿐만 아니라 자소[紫蘇, Perilla], 생강, 마늘 등을 널리 이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서지학연구, 2018]. 생강의 알싸한 맛과 마늘의 독특한 향미는 채소의 풋내를 잡고 발효를 돕는 방부제[Preservative]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 구분 | 향신료 | 특징 및 역사적 활용 |
|---|---|---|
| 대중적 매운맛 | 천초[川椒], 산초[山椒] | 혀끝이 얼얼해지는 알싸한 맛. 일반 백성들도 채취하여 널리 사용. |
| 고급 매운맛 | 후추[胡椒] | 수입산으로 귀한 대접을 받음. 궁중 및 양반가의 별미 김치에 주로 사용. |
| 풍미와 저장성 | 생강[生薑], 마늘[蒜] | 15세기 문헌에도 등장하는 핵심 양념. 풋내를 잡고 유해균을 억제함. |
지식 팁
오늘날 남부 지방에서 추어탕에 넣어 먹는 젠피(초피)가 바로 과거 우리 조상들이 김치에 넣었던 '천초'입니다. 그 강렬하고 톡 쏘는 향이 과거 김치의 주된 매운맛이었다고 상상해 보면, 선조들의 밥상 풍경이 훨씬 더 역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고추는 정확히 언제부터 김치에 들어가기 시작했나요?
16세기 말 유입된 고추는 18세기 중엽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 무렵에 이르러서야 김치의 주요 양념으로 본격적인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 전까지는 산초나 천초가 주류였습니다.
Q2: 고추가 없었다면 옛날 김치의 색깔은 전부 하얀색이었나요?
주로 맑은 국물의 백김치나 간장에 담근 장아찌 형태였지만, 붉고 고운 색감을 내고 싶을 때는 맨드라미꽃[Cockscomb flower]을 섞어 넣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기도 했습니다[년미상, 월미상, 한국농협김치].
Q3: 고추의 캡사이신이 없어도 김치의 발효가 잘 일어났나요?
네, 충분합니다. 소금의 염장[鹽藏, Salting] 효과와 생강, 마늘, 천초 등이 지닌 강력한 항균 작용 덕분에 유산균 발효[Lactic acid fermentation]가 안정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구축되었습니다.
마무리
우리의 김치는 고추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척박한 자연을 활용한 조상들의 지혜로 이미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핵심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핵심 정리
- 천초와 산초: 고추 유입 전, 한반도의 밥상을 책임지던 가장 대중적이고 알싸한 매운맛의 주역이었습니다.
- 후추의 활용: 외래 수입 향신료인 후추는 양반가와 궁중에서 고급스러운 맛과 권위를 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 생강과 마늘: 15세기 문헌에도 명시될 만큼 김치의 풍미를 살리고 건강한 발효를 돕는 핵심 재료였습니다.
오늘날의 붉고 매운 김치도 훌륭하지만, 맑은 국물에 산초와 생강 향이 은은하게 퍼지던 수백 년 전의 하얀 김치를 상상해 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우리 음식의 뿌리는 이토록 깊고 다채롭습니다.
참고 자료
- 서지학연구 (김치류 서지의 계통에 관한 연구), 2018.6 발행
- 한국의 김치문화 (이효지)
- 한국농협김치 (김치의 역사와 유래)
- 요록
- 동문선 (산촌잡영)
- 음식디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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