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맛은 천재적인 배추에서? 오늘 마법의 진실과 거짓 확인하기
K-Food 김치 뿌리 06 : 김치에 사용되는 지금의 맛있는 통배추는 '우장춘 박사'의 유전학적 마법이다.
김치 김장철이면 어김없이 거실 한가득 쌓여 있는 어른 머리통만 한 커다란 배추들. 칼을 넣어 반으로 갈랐을 때, 노랗고 단단하게 속이 꽉 찬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묵직한 배추 한 포기는 늦가을 동네에서 흔한 볼거리였습니다. 우리가 숨 쉬듯 당연하게 여기는 이 아삭하고 달콤한 '결구배추'가 사실 수백 년 전 조선시대 선조들은 맛보지 못했던 채소라는 점을 알고 계셨나요? 제가 확인한 근대 역사 기록에, 오늘날 김장 배추의 완벽한 둥근 형태는 불과 70여 년 전 한 천재적인 농학자의 헌신과 유전학적 마법이 빚어낸 놀라운 선물입니다.
조선시대의 배추, 상추와 비슷했다?
우리는 흔히 '김치' 하면 붉은 통배추를 떠올리지만,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밥상에 오르던 배추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13세기 중엽 고려 고종 때 편찬된 의학서 『향약구급방』에 배추를 뜻하는 한자인 '숭'이라는 글자가 처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되던 배추는 속이 둥글게 뭉치지 않고 잎이 상추나 청경채처럼 사방으로 벌어지는 '비결구종'이었습니다. 잎이 얇고 수분이 적어 김치를 담가도 금방 물러지고 저장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배추보다 조직이 단단한 '무'가 김장의 진짜 주연 역할을 차지했습니다.
중국산 '호배추'의 한계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속이 어느 정도 차오르는 결구배추가 중국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호나라 지금은 청나라로 알려진 이곳에서 왔다고 하여 이를 호배추라고 불렀습니다. 18세기 문헌인 『산림경제』 등을 보면 배추 재배법이 상세히 나오지만,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산 결구배추의 씨앗을 가져와 한반도에 심으면, 첫해에는 속이 꽉 찬 배추가 자라지만 그 씨앗을 받아 이듬해에 다시 심으면 결구가 풀리며 입이 퍼지는 즉, 이를 잡박화라 하는 품질 퇴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한반도의 기후와 토양에 유전적으로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매년 품질 퇴화가 일어나는 탓에 농민들은 값비싼 은을 지불하며 중국산 종자를 수입해야 하는 경제적 종속을 겪어야 했습니다.
씨 없는 수박보다 위대한 '배추 독립'
이 끊임없는 씨앗의 종속에서 우리 식탁을 해방시킨 인물이 바로 1950년 일본에서 영구 귀국한 세계적인 농학자 우장춘 박사입니다.
흔히, 그를 '씨 없는 수박의 창시자'로만 기억하지만, 사실 우장춘 박사의 핵심적인 업적은 한반도 기후에 최적화되어 스스로 번식이 가능한 한국형 결구배추 품종을 독자적으로 육성한 것입니다.
그는 속이 단단하게 차오르는 중국 배추 품종과, 맛이 좋고 병충해에 강한 한국의 재래종 배추를 교배하는 고도화된 육종 기술을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1950년대 후반 마침내 우리 땅에서 스스로 씨앗을 맺으면서도 잎이 얇고 단맛이 돌며 꽉 찬 '한국형 결구배추'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장춘 박사의 '원예 1호' 입니다.
재래종 배추에서 한국형 통배추로의 비교
바람에 흩날리던 잎사귀였던 과거의 '재래종 배추'는 오늘날의 배추와는 그 모습이 사뭇 달랐습니다. 마치 상추나 청경채처럼 잎이 사방으로 넓게 벌어지는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속이 둥글게 뭉치지 못하고 잎사귀가 꽃잎처럼 활짝 피어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이 배추는 잎이 얇고 조직이 다소 억세어 한겨울을 날 만큼 저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선조들은 주로 가볍게 버무려 곧바로 먹는 겉절이나 연하고 맑은 국물 김치를 담그는 용도로 아껴 먹었습니다.
그러나, 육종학이 피워낸 기적의 단맛이라 할 수 있는 '한국형 통배추'는 오늘날 우리가 마트 채소 코너에서 흔히 마주하는 크고 묵직하고 잎이 둥글게 뭉쳐 속이 빈틈없이 꽉 차오르는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형 통배추는 수분이 풍부하고 씹을수록 달콤한 속잎이 자랑이며, 오래 두고 먹어도 특유의 아삭함이 훌륭하게 유지됩니다. 특히 겹겹이 단단하게 포개진 배춧잎 사이사이는 매운 고춧가루와 진한 젓갈 양념을 넉넉히 품어 안기에 완벽하여, 오늘날 K-푸드의 대명사인 붉은 포기김치를 탄생시킨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국형 통배추의 대중화는 단순히 맛있는 채소의 등장을 뛰어넘어, 우장춘 박사를 비롯한 학자들의 땀방울이 만들어낸 육종학의 거룩한 승리이자 배고픔을 이겨낸 대한민국 식량 자립의 자랑스러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봄에 즐겨 먹는 여린 '봄동'이나 '얼갈이배추'가 바로 속이 꽉 차기 전 단계, 혹은 잎이 벌어진 형태로 자라는 품종들입니다. 우장춘 박사의 품종 개량 이전, 조선시대 선조들이 먹던 배추의 식감이 바로 이 봄동이나 얼갈이의 풋풋함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식탁을 바꾼 유전학, '우장춘의 삼각형'
이러한 품종 개량이 가능했던 바탕에는 전 세계 생물학계를 뒤흔든 '우장춘의 삼각형'이라는 천재적인 유전학 이론이 존재했습니다.
그는 1935년 일본의 한 의학잡지 'Journal of Japanese Botany, 1935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배추류, 양배추류, 흑겨자라는 서로 다른 십자화과 식물들이 유전적으로 교배되어 완전히 새로운 종인 유채, 갈갓 등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완벽하게 증명했습니다.
Plant Breeding Reviews, 2009에도 소개된 그의 종의 합성 이론 덕분에 배추와 다른 종의 우수한 형질을 인위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과학적 토대가 마련되었고, 훗날 한국형 배추와 제주도 감귤, 강원도 무를 개량하는 기적의 마법이 되었습니다.
우장춘 박사의 대중적인 오해
씨 없는 수박의 최초 발명자는 일본의 기하라 히토시 박사입니다.
우장춘 박사는 한국에 귀국한 후, 육종학의 중요성과 농업의 신비함을 대중과 정부에 쉽게 알리기 위해 자신이 개량하여 시연해 보인 것뿐입니다.
진짜 업적은 한국형 통배추와 무의 자급자족입니다.
옛날 배추로는 김장을 했던 방법
잎이 벌어져 있었기 때문에 켜켜이 속을 넣는 현대의 포저법 대신, 배추를 소금이나 장에 가라앉히는 방식의 백김치, 짠지, 또는 나박김치 형태로 썰어서 담갔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한국형 배추는 국제식품규격에 고유 명칭
한국형 통배추 종자는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Kimchi Cabbage'라는 고유 명칭 '김치 배추'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김장철마다 우리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묵직한 통배추 한 포기. 그 속에는 단순히 흙과 물의 힘만이 아니라, 전후 식량난을 겪던 시기, 조국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했던 한 과학자의 치열한 애국심이 겹겹이 배어 있습니다.
과거 한반도의 배추는 잎이 벌어진 비결구종으로 지금과 같은 통김치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우장춘 박사의 품종 개량을 통해 우리 땅에서 스스로 씨를 맺는 속이 꽉 찬 한국형 결구배추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우장춘의 삼각형이론과 육종 연구에 의해 서로 다른 종의 교배와 진화를 증명한 세계적인 유전학 이론으로 우리 밥상의 풍요를 이끈 과학적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밥상에 오른 아삭한 배추김치를 베어 물 때, 맛있는 유전학의 마법을 부려 우리에게 완벽한 김장을 선물해 준 '우장춘 박사'의 이름을 한 번쯤 기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식탁 위의 과학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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