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우리가 먹는 통배추 김치는 사실 '우장춘 박사'의 선물이다?

관리자
2026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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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ood 뿌리 06] 김치에 사용되는 지금의 맛있는 통배추는 '우장춘 박사'의 유전학적 마법이다.

김치 김장철이면 어김없이 거실 한가득 쌓여있는 어른 머리통만 한 커다란 배추들. 칼을 넣어 반으로 쩍 가르면, 노랗고 단단하게 속이 꽉 찬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묵직한 배추 한 포기는 늦가을 동네에서 흔한 볼거리 였습니다. 우리가 숨 쉬듯 당연하게 여기는 이 아삭하고 달콤한 결구배추[結球白菜, Headed cabbage]가 사실 수백 년 전 조선시대 선조들은 맛보지 못했던 채소라는 점을 알고 계셨나요? 제가 확인한 근대 역사 기록에, 오늘날 김장 배추의 완벽한 둥근 형태는 불과 70여 년 전 한 천재적인 농학자의 헌신과 유전학적 마법이 빚어낸 놀라운 선물입니다.


1. 조선시대의 배추, 상추와 비슷했다?

우리는 흔히 '김치' 하면 붉은 통배추를 떠올리지만,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밥상에 오르던 배추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13세기 중엽 고려 고종 때 편찬된 의학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13C]』에 배추를 뜻하는 한자인 '숭[菘, Cabbage]'이라는 글자가 처음 기록되어 있습니다[13세기, 월미상, 향약구급방]. 하지만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되던 배추는 속이 둥글게 뭉치지 않고 잎이 상추나 청경채처럼 사방으로 벌어지는 비결구종[非結球種, Non-headed cabbage]이었습니다. 잎이 얇고 수분이 적어 김치를 담가도 금방 물러지고 저장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배추보다 조직이 단단한 무[Radish]가 김장의 진짜 주연 역할을 차지했습니다.

핵심 포인트

배추 형태의 진화 과정
비결구종(상추처럼 벌어진 형태) → 반결구종(헐겁게 뭉친 형태) → 결구배추(속이 단단히 꽉 찬 현대의 통배추)


2. 중국산 '호배추'의 한계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속이 어느 정도 차오르는 결구배추가 중국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호나라(청나라)에서 왔다고 하여 이를 '호배추'라고 불렀습니다. 18세기 문헌인 『산림경제[山林經濟, 1715]』 등을 보면 배추 재배법이 상세히 나오지만,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산림경제]

당시 중국산 결구배추의 씨앗을 가져와 한반도에 심으면, 첫해에는 속이 꽉 찬 배추가 자라지만 그 씨앗을 받아 이듬해에 다시 심으면 잎이 훌러덩 벌어지는 품질 퇴화 현상(잡박화)이 일어났습니다. 한반도의 기후와 토양에 유전적으로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매년 값비싼 은을 지불하고 중국에서 씨앗을 수입해야만 하는 고충을 겪어야 했습니다.


3. 씨 없는 수박보다 위대한 '배추 독립'

이 끊임없는 씨앗의 종속에서 우리 식탁을 해방시킨 인물이 바로 1950년 일본에서 영구 귀국한 세계적인 농학자 우장춘[禹長春, Woo Jang-choon, 1898-1959] 박사입니다.

흔히 그를 '씨 없는 수박의 창시자'로만 기억하지만, 사실 그의 가장 위대하고 결정적인 업적은 한반도의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자가 채종(스스로 씨앗을 맺는) 결구배추 품종을 개발한 것입니다. [더 알아보기]
그는 속이 단단하게 차오르는 중국 배추 품종과, 맛이 좋고 병충해에 강한 한국의 재래종 배추를 교배하는 고도화된 육종 기술을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1950년대 후반 마침내 우리 땅에서 스스로 씨앗을 맺으면서도 잎이 얇고 단맛이 돌며 꽉 찬 '한국형 결구배추(원예 1호)'가 탄생하게 됩니다.

구분재래종 배추 (비결구종)한국형 통배추 (결구배추)
형태상추처럼 잎이 벌어짐잎이 둥글게 뭉쳐 속이 꽉 참
특징잎이 얇고 억세며 저장성이 낮음수분이 풍부하고 달며, 아삭함이 오래 감
김장 활용주로 겉절이나 연한 국물 김치용고춧가루, 젓갈을 품는 붉은 포기김치용
의의토착 채소의 원형육종학의 승리이자 식량 자립의 상징

봄에 즐겨 먹는 여린 '봄동'이나 '얼갈이배추'가 속이 꽉 차기 전, 혹은 잎이 벌어진 형태로 자라는 품종들입니다. 우장춘 박사의 품종 개량 이전, 조선시대 선조들이 먹던 배추의 식감이 바로 이 봄동이나 얼갈이의 풋풋함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4. 식탁을 바꾼 유전학, '우장춘의 삼각형'

이러한 품종 개량이 가능했던 바탕에는 전 세계 생물학계를 뒤흔든 '우장춘의 삼각형[Triangle of U]'이라는 천재적인 유전학 이론이 존재했습니다.

그는 1935년 일본 의학잡지(Japan. J. Bot, 1935)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배추류[Brassica rapa], 양배추류[Brassica oleracea], 흑겨자[Brassica nigra]라는 서로 다른 십자화과 식물들이 유전적으로 교배되어 완전히 새로운 종(유채, 갈갓 등)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완벽하게 증명했습니다.[Japan. J. Bot, 1935]
이 종의 합성 이론 덕분에 배추와 다른 종의 우수한 형질을 인위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과학적 토대가 마련되었고[Plant Breeding Reviews, 2009],
훗날 한국형 배추와 제주도 감귤, 강원도 무를 개량하는 기적의 마법이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씨 없는 수박의 최초 발명자는 일본의 기하라 히토시 박사입니다. 우장춘 박사는 한국에 귀국한 후, 육종학의 중요성과 농업의 신비함을 대중과 정부에 쉽게 알리기 위해 자신이 개량하여 시연해 보인 것뿐입니다. 진짜 업적은 배추와 무의 자급자족입니다.

Q2: 그럼 옛날 배추로는 김장을 어떻게 했나요?
잎이 벌어져 있었기 때문에 켜켜이 속을 넣는 '포저법' 대신, 배추를 소금이나 장에 가라앉히는 방식의 백김치, 짠지, 또는 나박김치 형태로 썰어서 담갔습니다.

Q3: 오늘날 전 세계에서 먹는 배추도 다 한국형인가요?
한국형 통배추 종자는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Kimchi Cabbage(김치 배추)'라는 고유 명칭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마무리

김장철마다 우리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묵직한 통배추 한 포기. 그 속에는 단순히 흙과 물의 힘만이 아니라, 가난했던 시절 조국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했던 한 과학자의 치열한 애국심이 겹겹이 배어 있습니다.

핵심 정리

- 배추의 기원: 과거 한반도의 배추는 잎이 벌어진 비결구종으로 지금과 같은 통김치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 배추의 독립: 1950년대 우장춘 박사의 품종 개량을 통해 우리 땅에서 스스로 씨를 맺는 속이 꽉 찬 한국형 결구배추가 탄생했습니다.
- 우장춘의 삼각형: 서로 다른 종의 교배와 진화를 증명한 세계적인 유전학 이론이 우리 밥상의 풍요를 이끈 과학적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밥상에 오른 아삭한 배추김치를 베어 물 때, 맛있는 유전학의 마법을 부려 우리에게 완벽한 김장을 선물해 준 '우장춘 박사'의 이름을 한 번쯤 기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식탁 위의 과학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참고 자료

  • 우장춘의 삼각형 (위키백과)
  • 향약구급방 (고려 고종)
  • 산림경제 (홍만선)
  • Journal of Japanese Botany (우장춘, 1935)
  • Plant Breeding Reviews (Jules Janick,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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