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젓갈 종류 5가지와 특징: 왜 서울은 새우젓이고 전라도는 멸치젓일까?
K-Food 김치 뿌리 28: 새우젓, 멸치젓, 황석어젓, 조기젓, 갈치젓: 지역별 젓갈 지도의 형성
수산 시장의 젓갈 골목에 들어서면 특유의 짭조름하고도 달큰한 발효 향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새우젓부터 뼈째 삭아 내린 멸치젓, 조기젓, 갈치젓 그리고 묵직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황석어젓까지. 거대한 고무통에 산더미처럼 쌓인 이 발효의 신비함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흥미로운 궁금증이 솟아오릅니다.
"왜 전라도 사람들은 까만 멸치젓을 푹푹 떠 넣고, 서울 사람들은 맑은 새우젓만 고집하는 걸까?" 단순히 입맛의 차이일 거라 생각했던 제 얄팍한 상식은, 조선시대 배들이 오가던 물길과 소금 장수들의 등짐 노선이 그려낸 장엄한 '물류 유통망의 역사'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한반도의 지형이 만들어낸 짭조름한 젓갈 지도의 비밀을 추적해 봅니다.
배가 닿는 곳에 젓갈이 내린다,'수운'의 마법
냉장고도, 고속도로도 없던 조선시대. 남해와 서해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를 내륙 깊숙한 곳까지 썩지 않게 운반하는 유일한 방법은 엄청난 양의 소금에 절여 '젓갈'로 만드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거운 젓갈 독을 수백 킬로미터 밖으로 실어 나른 것은 덜컹거리는 수레가 아니라 뱃길 즉, 수운이었습니다. 서해안에서 잡힌 새우와 밴댕이는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서울 마포나루에 산더미처럼 부려졌습니다.
서해의 어물들은 금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충청도 내륙 깊숙한 강경이나 부강 포구까지 들어갔습니다. 1913년 충북 청주 내륙에서 쓰인 조리서 『반찬등속』에 바다고기인 '조기젓'이 김치 재료로 흔하게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 금강 뱃길을 따라 내륙까지 침투했던 조선 후기 보부상과 젓갈 장수들의 땀방울 덕분이었습니다.
맑고 깔끔한 중부 지방의 자존심, '새우젓'과 '황석어젓'
서울과 경기, 충청을 아우르는 중부 지방은 겨울이 비교적 춥고 길어 김치가 쉽게 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김치를 담글 때 젓갈을 너무 많이 넣거나 짠 것을 쓰지 않았습니다.
서해안 강화도나 마포나루를 통해 독점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뽀얗고 맑은 '새우젓'은 이 지역 양반들의 깔끔한 입맛에 완벽하게 부합했습니다. 일상에서 먹기도 거부감이 없을 만큼 맑은 감칠맛을 뿜어내며, 동치미나 백김치의 시원한 탄산미를 살려주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여기에 충청도 지방은 금강을 따라 들어온 조기젓과 '황석어젓'을 끓여서 맑은 국물만 걸러 썼습니다. 머리에 노란 황금빛 돌을 이고 있는 황석어는 살이 연하고 단맛이 강해, 김칫독 바닥에 묻어두면 뼈까지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국물에 구수하고 고급스러운 노란빛 감칠맛을 더해 주었습니다.
남도 지방의 묵직한 돌직구, '멸치젓'과 '진젓'
반면, 남도의 전라, 경상 지방으로 내려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남쪽은 11월에도 날씨가 푹푹 찌듯 따뜻해서, 소금간을 약하게 하고 맑은 젓갈만 썼다가는 김치가 며칠 만에 쉰내를 풍기며 짓물러 썩어버렸습니다.
생존을 위해 부패를 막아야 했던 남도 사람들은 남해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멸치와 갈치를 아주 독한 소금에 푹푹 절여 까맣게 삭힌 '멸치젓'을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맑은 액체만 걸러내지 않고, 생선 살과 뼈가 거무스름하게 그대로 삭아 있는 묵직한 '진젓'을 푹푹 떠서 고춧가루에 거칠게 비벼 넣었습니다.
젓갈의 강한 염도가 배추의 부패를 철통같이 막아주고, 뼈째 녹아내린 진한 단백질 덩어리는 남도 지방 특유의 혀를 마비시킬 듯한 강렬하고 폭발적인 밥도둑 김치를 탄생시켰습니다. 기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대한민국 최고의 묵직한 미각을 만들어 낸 셈입니다.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의 기후의 특성
중부 지방인 서울, 경기, 충청의 김치 특징
중부 지방은 겨울이 춥고 길어 김치가 부패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기후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주로 마포나루, 강경포구, 강화도 등 서해안의 '수운'을 통해 유통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김치는 국물이 많고 맑으며 시원한 탄산미가 도드라지는 깔끔한 풍미를 자랑합니다.
남부 지방인 전라, 경상의 김치 특징
반면 남부 지방은 늦가을에도 날씨가 따뜻하여 김치가 쉽게 짓무르고 부패하기 쉬운 환경이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통영과 여수 등 남해안의 거대 어항과 포구를 거점으로 뼈째 삭힌 진젓이 풍부했습니다.
따라서 남부 지방의 김치는 상대적으로 국물이 적고 찐득하며, 묵직하고 깊은 감칠맛이 폭발적으로 우러나는 짙은 풍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생활 꿀팁
김장철 수산 시장에서 새우젓을 고를 때는 무조건 하얗고 예쁜 것만 찾지 마십시오.
서늘한 5월에 잡아 담백한 '오젓', 6월에 잡아 통통하고 살이 오른 최고의 '육젓', 그리고 가을에 잡아 크기는 작지만 단맛이 강한 '추젓' 중 김장 김치의 시원한 국물을 내기에는 가성비와 맛을 모두 잡은 '추젓'을 갈아 넣는 것이 가장 탁월한 선택입니다.
더 알아보기
강원도 지역은 지역 젓갈이 김치에 들어갔습니다.
강원도 해안가는 동해의 맑고 깊은 바다 특성상 새우나 멸치보다 오징어, 명태, 가자미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액체 형태의 젓갈 대신 생선 덩어리를 썰어 넣고 조밥과 버무려 삭히는 '식해 즉, 명태식해, 가자미식해 등'은 '명란젓'을 김치 속에 뚝뚝 썰어 넣어 시원하고 독특한 '해물 김치 문화'를 발달시켰습니다.
같지만 다른 황석어젓과 조기젓
둘 다 민어과에 속하는 친척 물고기이지만 다릅니다. 황석어는 참조기 새끼와 비슷하며 크기가 15cm 내외로 작고 대가리에 '노란 황석'이 들어있어 고소한 맛이 더 강하며 주로 젓갈용으로 푹 삭혀 씁니다. 반면 조기젓은 덩치가 더 큰 성체 조기를 통째로 염장한 것으로 주로 국물만 맑게 끓여내어 궁중 김치 등에 썼습니다.
내륙 산간 지방의 안동 등 지역 사람들은 젓갈을 보부상을 통해 얻었습니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산간 지방 사람들은 보부상들이 소금에 절여 지게에 지고 산을 넘어온 '간고등'어나 '꽁치젓' 등을 귀하게 사용했습니다. 젓갈이 턱없이 부족할 때는 '꿩고기'나 '쇠고기 육수'를 내어 감칠맛을 대신하기도 한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지도 위에 그려진 뱃길과 보부상들의 굽은 등허리가 만들어낸 거대한 젓갈의 실크로드. 우리가 지역마다 다르게 즐기는 김치의 맛은 결국 이 땅의 지형과 날씨가 빚어낸 거대한 운명이었습니다.
오늘 식탁에 오른 김치에서 짭조름한 멸치젓 냄새가 난다면 그 속에 담긴 따뜻한 남해의 바닷바람을, 맑고 시원한 맛이 난다면 마포나루를 거슬러 오르던 서해의 짠내를 한 번쯤 깊이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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