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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진화, 100년 전 뒤바뀐 역사의 기록으로 '당연함' 부수는 고추 혁명

관리자
2026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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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ood 김치 뿌리 04 : 고추의 유입과 도약하는 김치의 역사

어릴 적 할머니 댁 장독대에는 언제나 새빨간 김치 국물로 가득 찬 항아리들이 즐비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김치라는 단어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매콤한 맛과 붉은빛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옛 문헌을 쫓다 보니, 이 매혹적인 붉은빛이 우리 식탁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 것은 3천 년이 넘는 절임 채소 역사에서 불과 몇백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백 년 전, 맑고 투명했던 선조들의 식탁이 어떻게 지금의 열정적인 붉은빛으로 물들게 되었는지, 그 진화의 과정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하얀 김치에 찾아온 이방인의 씨앗

한반도 식문화의 운명을 바꾼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16세기 말에 일어난 임진왜란이었습니다. 이 전란의 혼란 속에서 이전까지는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던 외래 작물인 고추가 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내디뎠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고추가 유입되자마자 곧바로 식탁에 오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선조들은 이 낯선 식물을 무척 경계했습니다.
매운맛이 너무 강해 일종의 독으로 여겼거나, 주로 관상용으로 마당에 심기도 했습니다. 이 이방인의 씨앗이 한반도의 토착 발효 문화와 섞이기 위해서는 무려 100년이 넘는 긴 탐색과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김치 색깔의 역사적 변천을 다시 조명해 보면 16세기 이전에는 소금, 간장, 천초, 산초를 활용한 하얀색 맑은 절임으로만 만들어졌던 김치가 17세기에 조선의 위기와 같은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밥상에 대 변혁을 일으킬 고추가 유입됐습니다. 이후 이 고추는 한국 사람들에 의해 탐색 및 제한적인 사용이 허용되다가 18세기 이후부터 고춧가루의 전면적으로 도입되면서 붉고 매운 김치의 보편화되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8세기,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된 붉은 혁명

자료를 하나씩 대조해 보면서 제가 가장 전율을 느꼈던 순간은 18세기 중엽의 기록을 마주했을 때입니다. 100년 넘게 머뭇거리던 고추가 드디어 김치 항아리 속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든 명확한 문헌적 증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1766년,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유중임이 엮은 농업 및 가정생활 백과사전, <증보산림경제>의 <치선편>을 보면 고추를 김치에 널리 활용하기 시작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 책에는 배추김치, 동치미, 총각김치 등 다양한 김치를 담글 때 고추를 넣는 방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고추가 마침내 김치의 보조 재료를 넘어 주연으로 등극한, 식탁의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추 유입과 붉은 김치의 진화 과정

고추의 유입은 도입기, 과도기, 정착기로 나눌 수 있는데, 16세기 말부터 한반도로 전래된 낯선 열매 고추는 17세기까지 밥상에서 꽤 조심스러운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를 도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김치를 붉게 물들인 것이 아니라, 찌개나 맑은 국물 요리에 톡 쏘는 매운맛을 살짝 더하기 위해 아주 소량만 털어 넣는 보조 향신료 역할을 했습니다.

17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고추는 서서히 우리 입맛에 스며드는 과도기를 맞이합니다. 1670년경 쓰인 <음식디미방> 등의 옛 문헌을 살펴보면, 김치보다는 여러 가지 음식 조리법에 고추가 조심스럽게 등장하여 부분적으로 그 매운 맛을 더해가는 변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8세기 중반 이후, 고추는 마침내 우리 식탁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자리 잡는 정착기를 맞이합니다. 1766년에 출간된 농업서인 <증보산림경제>를 기점으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고춧가루를 듬뿍 버무려 식욕을 맹렬하게 자극하는 붉은 침채 제조법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되며,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화끈하고 매운 한국 김치의 모습이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가끔 묵은 김치나 깍두기를 씻어서 하얗게 볶아 먹기도 하는데, 붉은 양념을 씻어내고 들기름에 볶은 그 담백하고 짭조름한 맛이 바로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 선조들이 즐겨 먹었던 고대 김치의 원형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고추가 가져온 발효 과학의 마법

그렇다면 선조들은 왜 굳이 이 맵고 독한 고추를 김치에 듬뿍 넣기 시작했을까요? 단지 자극적인 맛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기막힌 발효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고춧가루를 김치에 넣으면 캡사이신 성분이 유해한 잡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젖산균의 발육을 돕는 천연 방부제 역할을 수행합니다.
과거에는 채소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귀한 소금을 써야 했지만, 고추를 넣음으로써 소금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덜 짜면서도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아삭한 식감까지 살려주는 고추의 마법 덕분에 김치는 오늘날의 완벽한 밸런스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동물성 젓갈과 고추의 환상적인 결합

고추의 유입은 또 다른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바로 해산물을 활용한 젓갈의 폭발적인 사용입니다. 이전의 하얀 김치에 비린내가 강한 생선이나 젓갈을 많이 넣으면 냄새가 역하고 쉽게 상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항균 작용과 비린내를 잡는 탈취 능력을 지닌 고춧가루가 들어가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고추의 매운맛이 젓갈의 비린내를 완벽하게 잡아주면서, 감칠맛의 폭탄인 동물성 아미노산이 김치 속에 풍성하게 녹아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반도의 식물성 채소와 바다의 동물성 단백질이 고추라는 매개체를 만나 세계 최고의 발효 식품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만 들어온 것인가요?

고추의 원산지는 중남미 지역이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한반도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군인들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을 통한 북방 유입설이나 임진왜란 이전 자생설 등 다양한 학술적 논의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Q2: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김치가 전혀 맵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산초, 천초, 마늘, 생강 등을 이용해 얼얼하고 알싸한 매운맛을 냈습니다. 다만, 고추처럼 시각적으로 붉고 화려한 색감을 내거나 장기간 보존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Q3: 18세기 <증보산림경제> 이후로 하얀 김치가 사라졌나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백김치, 동치미 등의 형태로 하얀 김치는 여전히 고유한 영역을 지키며 발전했습니다. 고추의 유입은 기존의 김치를 없앤 것이 아니라, 매운 김치라는 거대하고 매력적인 선택지를 추가한 식문화의 확장이었습니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비극 속에서 우연히 한반도에 뿌리내린 작은 고추씨 하나. 그 씨앗은 100여 년의 긴 기다림 끝에 선조들의 훌륭한 발효 기술과 만나 우리 민족의 영혼을 울리는 붉은 김치로 피어났습니다.

고춧가루는 소금 사용량을 줄이고 젓갈의 비린내를 잡아주어 현대 김치의 과학적 발효 완성을 이끌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어 붉고 찬란한 김치를 꺼내 먹으며, 이 붉고 강렬한 색채가 10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조상들의 지혜로 빚어진 끈기와 과학의 결정체임을 되뇌이며, 우리 밥상의 풍경이 그 어느 때보다 놀랍도록 자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가슴으로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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