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김치 판매 시작'은 1900년대 인쇄 매체의 영향

관리자
2026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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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ood 뿌리 20] 1900년대 인쇄 매체에 등장한 '김치 판매'의 시작

오늘날 대형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포장된 김치를 사 먹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100여 년 전으로 되돌려보면, 한국인에게 김치란 절대로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집집마다 고유의 씨간장[Seed soy sauce: Aged soy sauce used as a starter]이 있듯, 김치 역시 각 가정의 어머니들이 직접 밭을 일구고 정성껏 절여내는 숭고한 가사 노동의 결정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철저한 자급자족[自給自足, Self-sufficiency]의 영역에 있던 김치는 언제부터 상품의 가치를 지니고 거래되기 시작했을까요?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오던 1900년대 초반, 신문과 잡지 등 인쇄 매체에 기록된 식문화의 변화상을 통해 '상업용 김치'가 탄생하게 된 흥미로운 궤적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1. 생계를 위한 수단, 최초의 김치 판매 기록

한반도 내에서 본격적인 상업용 김치 광고가 등장하기 이전, 역사적으로 '김치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는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놀랍게도 중국 북경(연경)에서 발견됩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창업[金昌業, Kim Chang-eup]이 1712년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쓴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 Nogajae yeonhaengilgi: An 18th-century travelogue to Beijing]』를 보면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기록에 따르면, 병자호란[丙子胡亂, Qing invasion of Joseon in 1636] 때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인의 후손인 69세 노파가 연경(베이징)에서 손녀와 함께 '조선식 김치와 장을 담가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以我國法造沈菜及醬 賣此資生云)'고 조선말로 말했다는 사실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1712, 노가재연행일기].
이는 이미 18세기에 조선식 발효 김치가 타국에서도 훌륭한 상품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입니다.

핵심 포인트
김치 상업화의 3단계 발전 과정
1. 18세기 해외 판매: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생계를 위해 김치를 담가 팖.
2. 20세기 초 규격화: 근대 인쇄 매체와 조리서의 등장으로 김치 레시피가 표준화됨.
3. 근현대 상품화: 도시화와 식재료 유통망의 발달로 시장에서 김치와 젓갈이 대량 거래됨.


2. 근대 인쇄 매체와 조리서가 불러온 '레시피의 규격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구한말[舊韓末,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과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Japanese colonial period]는 한반도 식문화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시기였습니다. 특히 신문, 잡지 등의 근대 인쇄 매체와 상업용 출판물이 등장하면서, 집안 대대로 구전[口傳, Oral transmission]되던 김치 담금법이 활자화되어 대중에게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치의 근대 역사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전반기 한반도에서 발간된 각종 조리서와 인쇄 매체에 수록된 김치 관련 기사들을 통해 통배추김치[Tongbaechu-kimchi, Whole headed-cabbage kimchi]가 전국적인 김장 문화로 확고히 자리 잡는 과정이 뚜렷하게 확인됩니다[2013, 통김치, 탄생의 역사].

대표적으로 1917년 방신영이 출간한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Joseon yorijebeop: Modern Korean cookbook]』에는 김장김치 10종, 보통 때 먹는 김치 19종, 장아찌 18종 등 김치의 종류가 구체적인 분량과 계량법을 통해 상세히 서술되었습니다[1917, 조선요리제법].
레시피가 활자화되고 규격화[規格化, Standardization]되었다는 것은, 곧 누구나 동일한 맛의 김치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상업적 토대'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3. 도시화가 촉발한 김치와 식재료의 거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된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도시화)은 김치 판매를 부추긴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농토가 없는 도시 노동자와 서민들은 텃밭에서 배추를 기를 수 없었기에 모든 식재료를 시장에서 구매해야만 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18세기 후반부터 어업과 유통망이 발달하면서 젓갈[Jeotgal, Salted fermented seafood: A crucial ingredient for boosting umami in Kimchi]이 일상식으로 보편화되었고, 한양(서울) 도성 내의 칠패[七牌, Chilpae: A major fish market in Hanyang]나 이현[梨峴, Ihyeon] 같은 어시장에서는 여러 생선에서 떨어진 비늘까지 소금에 절여 팔 정도로 식재료의 상업적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2024, 1, 조선시대 젓갈 활용과 김치 조리법의 변천].

여기에 19세기 말 임오군란[壬午軍亂, Military Mutiny of 1882] 이후 중국인들을 통해 속이 단단하게 꽉 찬 결구배추[結球白菜, Headed cabbage: A type of cabbage with tightly packed leaves forming a round head]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습니다[지역N문화 테마].
생산량이 많고 상업적 재배가 쉬운 결구배추의 보급과, 신문 광고를 통해 유통되는 전국 각지의 젓갈 및 소금은 '사서 담그는 김치'를 넘어 점차 '완성된 김치 완제품'을 거래하는 현대적 식품 산업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구분19세기 이전의 김치 문화20세기 초반(1900년대)의 김치 문화
생산 주체각 가문의 여성들이 자급자족으로 직접 생산상업적 채소 재배농 및 전문 상인 등장
정보 전달고문헌이나 가문 내 구전(口傳)을 통해 은밀히 전수신문, 잡지, 근대 조리서를 통한 레시피의 대중화 및 규격화
재료 유통자가 재배 채소 및 소규모 물물교환어시장(젓갈), 상설시장(배추, 소금)을 통한 대규모 자본 거래

대형 마트의 진열대나 홈쇼핑에서 전국 각지의 특산물 김치(예: 여수 돌산갓김치, 해남 배추김치)를 손쉽게 주문할 수 있는 오늘날의 편리함은, 100여 년 전 근대 신문과 조리서들이 '김치는 집에서만 담그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레시피를 대중에게 널리 공유해 준 덕분에 가능해진 위대한 유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1900년대 신문에는 실제로 어떤 김치 관련 광고가 실렸나요?
초기 근대 신문에는 완성된 김치 자체를 파는 광고보다는, 김장의 핵심 원료인 '우수한 종자의 배추(결구배추) 씨앗'이나 대량 생산된 '질 좋은 소금과 젓갈'을 판매하는 광고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식재료의 산업화가 완제품 김치 판매의 전 단계였음을 보여줍니다.

Q2: 왜 옛날에는 김치를 완제품으로 팔지 않았나요?
첫째, 냉장 유통 기술이 없어서 발효 식품인 김치가 운송 중에 쉽게 시어지거나 터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둘째, '김치 맛이 곧 그 집안 안주인의 솜씨와 가풍[家風, Family tradition]'을 상징했기 때문에 남이 만든 김치를 사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유교적 사회 인식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Q3: 근대 조리서들은 어떻게 김치의 상업화를 도왔나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Joseon mussang sinsik yorijebeop: A modern cookbook from 1924]』 같은 책들은 과거 '적당히, 알맞게'로 표기되던 양념의 양을 구체적인 수치와 단계별 제조 공정으로 정리했습니다[1924,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이 표준화된 매뉴얼 덕분에 훗날 김치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마무리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신성한 장막 안에 머물던 김치가 신문의 활자와 시장의 가판대로 걸어 나오기까지, 20세기 초반의 한반도는 격동하는 식문화의 실험장이었습니다.

핵심 정리

- 해외에서의 첫 상업화: 18세기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의 기록은 조선식 김치가 일찍이 청나라에서 생계형 상품으로 가치를 입증했음을 보여줍니다.
- 인쇄 매체의 기여: 1900년대 전후로 발간된 각종 조리서와 기사들은 레시피를 대중화하고 규격화하여 대량 생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 시장 경제의 결합: 결구배추[結球白菜]의 보급과 젓갈 유통망의 확대는 철저한 자급자족 식품이었던 김치를 거대한 현대 산업 자본의 영역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너무도 당연하게 장바구니에 담는 '포장 김치' 한 팩. 그 안에는 신문과 잡지를 뒤적이며 더 나은 맛을 찾고자 했던 100년 전 모던보이, 모던걸들의 활기찬 일상과 식문화의 혁명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통김치, 탄생의 역사 (박채린, 2013)
  • 노가재연행일기 (김창업, 1712)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이용기, 1924)
  • 조선요리제법 (방신영, 1917)
  • 조선시대 젓갈 활용과 김치 조리법의 변천 (신동훈·박채린, 2024)
  • 지역N문화 테마 (전통배추를 밀어내고 김치의 원료가 된 결구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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