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김치 유산균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관리자
2026년 3월 9일
0
0

[K-Food 뿌리 16] 김치 유산균 '바이셀라 코리엔시스'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잘 익은 김치를 씹었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톡 쏘는 청량감과 깊은 감칠맛. 이는 인간의 손맛을 넘어선, 수백만 마리 미생물들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교향곡입니다.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한국의 김치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토종 유산균인 '바이셀라 코리엔시스[Weissella koreensis]'의 강력한 항균 및 다이어트 효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렇다면 요구르트처럼 인위적으로 균을 넣지도 않는데, 이 엄청난 유산균들은 언제 어디서부터 김칫독 안으로 들어와 활동을 시작하는 것일까요? 옛 문헌과 식품 미생물학의 원리를 통해 선조들이 완성한 자연 발효의 마법을 쫓아가 보았습니다.


1. 종균 접종이 없는 '자연 발효'의 기적

전 세계의 유명한 발효 식품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유를 가열 살균한 뒤 유산 종균[Starter culture]을 인위적으로 넣는 요구르트나, 곡물을 쪄서 누룩을 섞어 발효시키는 술처럼 대부분의 발효식품은 원재료를 '살균'하고 인간이 원하는 균을 '직접 주입'합니다[식품산업과 영양, 2020].

하지만 한국의 김치는 이 상식을 완전히 파괴합니다. 김치는 원료인 생채소를 살균하지도 않고, 어떤 유산 종균을 인위적으로 접종하지도 않은 채 오직 '자연 발효[Natural fermentation]'에 의존합니다[식품산업과 영양, 2020].
채소가 밭에서 자라면서 묻어온 온갖 잡균과 자연의 미생물들이 그대로 김칫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지 않고 몸에 좋은 유산균(젖산균)만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핵심 포인트

김치 유산균이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3가지 과학적 조건
1. 깨끗한 물과 소금: 잡균을 1차로 억제하고 젖산균의 생육을 돕는 환경 조성
2. 동물성 젓갈의 투입: 이미 1차 발효된 젓갈이 훌륭한 유산균 스타터(Starter) 역할 수행
3. 고추 등 향신료: 캡사이신과 알리신이 유해 부패균을 살균하는 천연 방부제 역할


2. 소금과 젓갈이 만들어낸 '미생물 배양기'

잡균이 우글거리는 생채소가 부패하지 않고 유익한 발효를 일으키는 첫 번째 방어막은 바로 소금[鹽, Salt]입니다. 식품 과학 연구에 따르면, 김치를 담글 때 붓는 적절한 농도의 소금물은 원료에 잔존하는 유해한 잡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상대적으로 염분에 강한 내염성[Halotolerant] 젖산균의 생육만을 촉진하는 완벽한 거름망 역할을 합니다[식품산업과 영양, 2020].

여기에 조선시대부터 김치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젓갈[Jeotgal, Salted seafood]은 김치 발효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젓갈은 이미 자체적으로 한 번 발효가 된 동물성 식품이기 때문에, 이것이 생채소 무리에 들어가는 순간 요구르트를 만들 때 우유에 발효 유산균을 넣는 것과 같은 훌륭한 '스타터(종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한국인의 음식과 일상 7주차]. 식물성 채소의 식이섬유와 젓갈의 동물성 아미노산이 섞여 유산균이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먹이 환경이 완성된 것입니다. [더 알아보기]


3. 고유의 유산균, '바이셀라 코리엔시스'의 활약

이러한 치열하고 완벽한 조건 속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김치 고유의 젖산균 중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것이 바로 '바이셀라 코리엔시스[Weissella koreensis]'입니다.

초기에는 류코노스톡[Leuconostoc] 같은 유산균들이 톡 쏘는 상쾌한 맛을 만들어내다가, 발효가 깊어지고 산도가 높아지면 산에 강한 바이셀라와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계열의 균들이 김칫독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김치가 발효되면서 유산균이 만들어내는 기능성 물질들은 소화를 돕고 유해균을 몰아냅니다[한국인의 음식과 일상 7주차].
실험실의 현미경도 없던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은 오로지 자연의 흐름을 관찰하고 맛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경험하며 이 위대한 미생물 배양기를 통제하고 다루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구분서양의 발효 (요구르트 등)한국 김치의 자연 발효
균의 유입 방식원료 살균 후 인위적인 종균(Starter) 접종자연 상태의 미생물 그대로 유입
발효 통제 물질가열 및 인공 통제소금, 마늘, 고추의 천연 항균 작용
동·식물성 융합단일 식재료 중심 (우유)식물성(배추) + 동물성(젓갈)의 복합 영양 융합

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었을 때, 국물 1ml 속에는 무려 1억 마리에 가까운 유산균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시중에서 비싼 돈을 주고 유산균 캡슐을 사 먹지 않아도, 찌개로 끓이지 않은 시원하고 아삭한 생김치 몇 점을 먹는 것만으로도 장 건강을 지키는 훌륭한 생균제를 섭취하는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젓갈을 넣지 않는 사찰 김치나 백김치에는 유산균이 없나요?

아닙니다. 젓갈이 들어가면 초기 발효가 훨씬 빠르고 풍부한 감칠맛이 나지만, 젓갈이 없더라도 배추와 무 자체에 묻어있는 자연 미생물과 탄수화물 성분 덕분에 충분히 훌륭한 젖산 발효가 일어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산균이 증식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합니다[년미상, 월미상, 한국인의 음식과 일상 7주차].

Q2: 바이셀라 코리엔시스라는 이름은 왜 붙은 건가요?

국내 연구진이 한국의 전통 김치에서 세계 최초로 분리하여 발견한 신종 유산균이기 때문에, 학명에 '코리아(Korea)'를 뜻하는 '코리엔시스(koreensis)'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Q3: 푹 익어서 시어진 묵은지에도 유산균이 살아있나요?

발효가 너무 지나쳐 강한 산성을 띠게 되면 대부분의 유산균은 활동을 멈추거나 죽게 됩니다. 그래서 시어진 묵은지보다는 톡 쏘는 맛이 절정에 달한 '적당히 익은 김치'에 살아있는 유산균이 가장 많습니다.


마무리

현미경도, 미생물학이라는 학문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 하지만 한반도의 장독대 안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미생물학 실험이 매년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핵심 정리

- 자연 발효의 승리: 인위적인 종균 접종 없이, 소금과 자연환경만을 이용해 유해균을 잡고 유산균을 키워낸 과학적 승리입니다.
- 젓갈의 과학적 역할: 동물성 단백질인 젓갈은 감칠맛을 더할 뿐만 아니라 유산균의 폭발적 증식을 돕는 스타터(종균) 역할을 했습니다.
- 토종 유산균의 보고: 선조들이 다져놓은 이 완벽한 발효 환경 덕분에, 오늘날 김치는 바이셀라 코리엔시스 등 세계가 주목하는 유산균의 거대한 보고가 되었습니다.

오늘 밥상에서 잘 익은 김치 한 조각을 베어 물 때,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들을 다스려 식탁 위의 보약으로 만들어 낸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과학적 통찰을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맛있는 건강은 이렇듯 수백 년을 이어온 지혜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참고 자료

  • 식품산업과 영양 (김치의 발생가설과 발전역사, 한응수, 2020.2)
  • 한국인의 음식과 일상 7주차 (오창현, 서울대학교)
이 글이 도움이 되셨나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