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다른 이름: 고려시대 문호 이규보가 노래한 '무장아찌'의 정체
[K-Food 뿌리 02] '김치'의 다른 이름 - "'무'장아찌"
매일 밥상에 오르는 시원한 깍두기나 동치미를 먹을 때면, 이 아삭한 식감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음식의 역사를 좇아 고문헌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놀랍게도 800여 년 전 고려시대 문호의 시 속에서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무김치의 생생한 흔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식탁 위의 반찬이 당대 최고 지식인의 문학 작품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김치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우리 삶을 지탱해 온 든든한 뿌리였음을 깊이 깨닫게 해 줍니다.
1. 800년 전의 텃밭 예찬, '가포육영'
고려시대 대문호 이규보[李奎報, Renowned scholar of Goryeo]가 1241년에 펴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Collected works of Lee Gyu-bo]』을 펼쳐보면 무척 흥미롭고 정겨운 시가 한 편 등장합니다[동국이상국집]. - 더 알아보기 -
바로 자신의 텃밭에 심은 오이, 가지, 파, 순무, 아욱, 박 등 여섯 가지 채소를 예찬한 「가포육영[家圃六詠, Six poems on the vegetable garden]」이라는 작품입니다[서지학연구, 2018].
문헌을 살펴보면, 이 시에 등장하는 순무[菁, Turnip]에 관한 구절은 한반도 김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구체적인 기록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경북매일, 2025]
핵심 포인트
이규보의 시에 기록된 무절임의 두 가지 형태
- 여름철 대비 : 장[醬, Soy sauce or bean paste]에 담근 무 장아찌
- 겨울철 대비 : 소금[鹽, Salt]에 절인 무김치 (동치미의 원형)
시구에 담긴 생생한 묘사
시의 원문을 보면 선조들의 밥상 풍경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 원문 기록: "장에 담근 장아찌[得醬]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漬鹽] 겨울 내내 반찬 되네" [경북매일, 2025].
-생생한 식감 묘사: 시의 후반부에는 "뿌리는 땅속에서 자꾸만 커져, 서리 맞은 것 칼로 베어 먹으니 배와 같은 맛이지"라며 늦가을 서리를 맞고 단맛이 든 무의 맛을 극찬하고 있습니다[서지학연구, 2018].
무를 과일인 배[梨, Pear]에 비유한 대목에서 당시 사람들이 채소를 얼마나 각별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여름의 '득장'과 겨울의 '지염'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계절에 따라 채소의 저장 방식을 명확히 다르게 적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냉장 시설이 없던 시대에 기후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훌륭한 발효 과학[Fermentation science]이었습니다.
이규보 시에 나타난 두 가지 염장법 비교
| 구분 | 명칭과 방식 | 목적과 현대적 형태 |
|---|---|---|
| 여름철 | 득장[得醬, Pickled in soy sauce] | 무더운 여름, 쉽게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짠 장(간장/된장)에 박아둠. 현재의 장아찌[Jangajji] 원형. |
| 겨울철 | 지염[漬鹽, Salting vegetables] | 채소가 나지 않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늦가을에 소금물에 절임. 현재의 동치미[Dongchimi] 원형. |
실전 팁
고깃집이나 식당에 가면 흔히 나오는 짭조름한 양파 장아찌나 쌈무, 그리고 겨울철 고구마와 함께 먹는 동치미 국물이 바로 이 800년 전 '득장'과 '지염'의 직계 후손들입니다. 이 오랜 지혜의 산물임을 알고 맛보면, 그 아삭함 속에 깃든 역사의 깊이가 훨씬 진하게 다가옵니다.
3. 배추 이전, 식탁의 진정한 지배자 '무'
우리는 흔히 '김치[Kimchi]'라고 하면 붉은 통배추 김치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규보의 시를 포함해 조선시대 초기 문헌들까지 깊이 들여다보면, 당시 식탁의 진정한 지배자는 배추가 아닌 '무[Radish]'와 '순무[Turnip]'였습니다.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되던 배추는 지금처럼 속이 꽉 찬 결구배추[結球白菜, Headed cabbage]가 아니라 상추처럼 잎이 벌어진 비결구종이어서 잎이 얇고 저장성이 떨어졌습니다. 반면 단단한 뿌리채소인 무는 겨울철 오래 보관하며 발효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규보가 배추 대신 무(순무)를 시의 주역으로 삼은 것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당대 농업 및 식문화의 현실이 짙게 반영된 결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이규보가 먹은 것은 지금의 무와 완전히 똑같은 채소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시에 기록된 한자는 '청(菁)'으로, 이는 오늘날 주로 강화도 등지에서 재배되는 '순무[Turnip]'를 가리킵니다. 일반 무보다 알이 작고 단단하며 톡 쏘는 알싸한 맛과 단맛이 특징입니다.
Q2: 그때의 무김치도 붉고 매웠나요?
아닙니다. 고추[Gochu, Chili pepper]가 한반도에 유입된 것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의 일입니다. 따라서 13세기 고려시대 이규보가 먹었던 무김치는 고춧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맑은 소금물에 절인 하얀 동치미나 짠지 형태였습니다.
Q3: 왜 국가 의례 문서가 아닌 개인 문집에서 이런 기록이 중요한가요?
국가 공식 기록에 등장하는 의례용 절임 채소인 '저[菹]'는 제사상에 오르는 형식적인 음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이규보의 개인 문집 속 기록은 당시 백성들과 선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실제로 텃밭을 일구고 반찬을 만들어 먹었던 생생한 '생활사'를 증명해주기 때문에 식문화 연구에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마무리
문헌 속에 잠들어 있던 이규보의 시구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씹어 먹는 무김치 한 조각에 800년이라는 거대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소금에 무를 묻었던 선조들의 절박함. 그리고 늦가을 서리 맞은 무의 단맛을 과일에 비유하며 풍류를 잃지 않았던 낙천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핵심 정리
-최초의 구체적 기록: 1241년 『동국이상국집』의 「가포육영」은 무를 활용한 김치 문화를 묘사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여름 장아찌, 겨울 동치미: 득장[得醬]과 지염[漬鹽]이라는 방식을 통해 계절별 기후에 맞춘 뛰어난 발효 저장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무의 중요성: 배추가 발달하기 전, 무는 한반도의 겨울 식탁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김치 재료였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 하얀 동치미나 무김치를 꺼내실 때, "서리 맞은 무를 베어 먹으니 배와 같은 맛이지"라며 미소 지었을 800년 전 한 선비의 여유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평범한 식탁 위의 반찬이 오늘따라 유독 특별하고 달게 느껴질 것입니다.
참고 자료
동국이상국집 (이규보)
서지학연구 (김치류 서지의 계통에 관한 연구)
경북매일 ([시민기자] 세계가 즐기는 김치, 김장은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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