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기록한 최초의 서양인: 이상한 냄새의 셀러드
[K-Food 뿌리 19] 서양인이 기록한 최초의 김치: "이상한 냄새의 샐러드"
19세기 후반, 굳게 닫혀 있던 조선의 항구가 열리면서 푸른 눈의 선교사[宣敎師, Missionary]와 외교관, 여행가들이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낯선 땅의 모든 것이 신기했던 그들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조선인들의 밥상이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건강식품이 된 김치지만, 100여 년 전 이방인들이 처음 마주한 김치는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미지의 음식이었습니다. 낯선 식문화가 세계와 처음 만났던 극적인 순간,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김치의 모습을 역사적 맥락과 발효 과학을 통해 쫓아가 보았습니다.
1. 푸른 눈의 이방인을 놀라게 한 '붉은 채소 절임'
구한말 조선을 찾았던 서양인들이 남긴 견문록을 살펴보면, 조선인들의 식사 풍경과 음식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들은 식탁마다 빠지지 않고 오르는 붉은 채소 반찬을 보며 자신들의 식문화에 빗대어 '매운 피클[Spicy pickle]' 혹은 '이상한 냄새가 나는 샐러드[A strange-smelling salad]'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이 이토록 강렬한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당시 조선의 김치가 이미 고도화된 발효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헌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김치는 단순한 채소 절임을 벗어나 '동물성 발효식품'인 젓갈[Jeotgal, Salted seafood]과 고추[Gochu, Chili pepper], 마늘, 생강, 파 등 향신 채소가 듬뿍 버무려진 복합 양념(김칫소)의 형태로 확고한 정체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2023, 4, 동북아역사 리포트 38호].
생채소의 비린 향을 덮고 발효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된 마늘과 젓갈의 강렬한 냄새는, 치즈나 버터 냄새에만 익숙했던 서양인들의 코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핵심 포인트
구한말 서양인들이 김치에 충격을 받은 3가지 이유
1. 시각적 낯설음: 고춧가루로 붉게 물든 채소의 모습
2. 후각적 강렬함: 발효된 해산물(젓갈)과 다량의 마늘이 뿜어내는 냄새
3. 미각의 차이: 서양의 식초 절임과는 완전히 다른 톡 쏘는 산미와 매운맛
2. 사우어크라우트와 조선 김치의 결정적 차이
서양인들에게 채소를 절여 먹는 문화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는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German pickled cabbage]'라는 전통 음식이 존재합니다. 식품 과학 기록을 보면 사우어크라우트 역시 우리의 백김치처럼 채소를 생으로 소금에 절여 젖산 발효[Lactic acid fermentation]를 시킨 음식입니다[2020, 2, 식품산업과 영양].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왜 자신들의 사우어크라우트와 발효 원리가 유사한 김치를 유독 낯설어했을까요? 그 결정적인 이유는 '양념의 복합성'과 '저장 용기'에 있습니다.
서양의 피클이나 사우어크라우트는 채소 단일 품목에 소금이나 식초만을 더해 보존성에 목적을 둡니다[2020, 12, 연합뉴스].
반면, 한국의 김치는 젓갈이라는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 채소와 섞이면서 폭발적인 감칠맛과 강한 발효 가스를 만들어냅니다[2023, 4, 동북아역사 리포트 38호].
더욱이 이 모든 과정이 미세한 숨구멍으로 가스를 배출하는 옹기[甕器, Onggi: Earthenware] 속에서 능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아리 뚜껑을 열 때마다 농축된 마늘과 젓갈의 발효취가 공기 중으로 강렬하게 뿜어져 나와 이방인들을 당황하게 했던 것입니다.
| 구분 | 서양의 절임 (사우어크라우트, 피클) | 한국의 김치 |
|---|---|---|
| 발효의 주체 | 식초를 붓거나 소금만으로 단순 절임 | 소금 절임 후 유산균의 능동적 젖산 발효 |
| 부재료의 특징 | 단일 채소 위주, 향신료 사용 최소화 | 고추, 마늘, 생강 등 자극적인 향신 채소 듬뿍 사용 |
| 결정적 차이 | 동물성 단백질이 들어가지 않음 | 젓갈(동물성 발효식품)의 추가로 냄새와 감칠맛이 증폭됨 |
팁
오늘날 외국인 친구에게 김치를 처음 소개할 때, 무작정 먹어보라고 권하기보다는 "이것은 서양의 치즈나 요구르트처럼 유산균이 살아 숨 쉬는 발효 샐러드야"라고 설명해 보세요. 서양인들도 과거의 선교사들처럼 낯선 냄새에 당황하다가도, 발효 과학의 훌륭한 원리를 알게 되면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김치를 맛보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처음에는 기겁했던 서양인들도 나중에는 김치를 잘 먹었나요?
네, 기록에 따르면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식탁에서 치워달라고 부탁하던 선교사나 의사들도, 조선에 오래 체류하면서 점차 겨울철 비타민 보충과 소화 불량 해소에 김치가 탁월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즐겨 먹게 된 사례가 많습니다[외부 정보, 구한말 외국인 견문록 (교차 검증 필요)].
Q2: 19세기 말 조선의 김치는 무조건 맵고 빨간색이었나요?
대부분 그랬습니다. 고추가 16세기 말 유입된 이후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일반 백성들의 식탁까지 보편적인 양념으로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집 등을 보면 고추와 젓갈을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음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2013, 4, 문화일보].
Q3: 중국인들은 서양인들과 달리 김치의 냄새를 낯설어하지 않았나요?
중국인들 역시 낯설어했습니다. 중국의 파오차이[泡菜, Paochai]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봉 용기에 채소를 담가 보존 자체에만 집중하는 초산 절임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2020, 12, 연합뉴스], 마늘과 젓갈이 발효되며 뿜어내는 조선 김치의 역동적인 냄새는 중국인들에게도 독특한 충격이었습니다.
마무리
"이상한 냄새가 나는 샐러드." 이 투박하고 당황스러운 묘사 속에는 우리 선조들이 척박한 자연을 이겨내기 위해 수백 년간 발전시켜 온 위대한 융합과 발효의 과학이 숨어 있었습니다.
핵심 정리
- 이방인의 첫인상: 19세기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은 김치의 강한 냄새와 매운맛을 경험하고 이를 낯선 '샐러드'나 '피클'로 묘사했습니다.
- 냄새의 과학적 이유: 단순한 소금 절임을 넘어서 동물성 젓갈과 마늘, 고추가 결합하여 강력한 젖산 발효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 문화적 융합의 완성: 서양의 채소 절임이나 중국의 파오차이와 확연히 다른, 한국만의 능동적인 가미(加味) 발효식품으로서의 독자성을 증명합니다.
김치 특유의 아릿하고 톡 쏘는 냄새 때문에 코를 쥐었던 100여 년 전의 서양인들이, 오늘날 전 세계 마트에서 튜브형 김치 소스를 사서 피자에 뿌려 먹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밥상 위의 낯선 샐러드는 이제 세계인의 미각을 사로잡는 가장 강력한 문화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 동북아역사 리포트 38호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 식품산업과 영양 25(2) (김치의 발생가설과 발전역사, 한응수)
- 연합뉴스 (팩트체크: 김치가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전래했다?)
- 문화일보 (김치의 기원, 중국 저채 아니다)
- 조선시대 김치의 탄생 (박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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